불가리아 왕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불가리아 왕국은 190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차르 페르디난트 1세가 즉위하면서 시작되었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제2차 발칸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토를 잃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동맹국 편에 섰다가 패배하여 보리스 3세가 즉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에 가담했으나, 보리스 3세 사망 이후 소련군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어 왕정이 폐지되었다. 마지막 차르 시메온 2세는 망명 후 귀국하여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불가리아 왕국 - 불가리아의 왕실 찬가
불가리아의 왕실 찬가는 불가리아 왕국에서 사용되었으며, 차르를 보호하고 불가리아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는 불가리아어 가사를 담고 있고, 문자 개혁 이전과 이후의 가사가 존재한다. - 불가리아 왕국 - 마리차는 전진한다
마리차는 전진한다는 니콜라 지브코프가 작사하고 1885년부터 1947년까지 불가리아의 국가로 사용된 군가로, 불가리아 의용군을 기리기 위해 작곡되었으며 군대의 사기를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불가리아의 역사 - 볼가강 불가리아
볼가강 불가리아는 7세기부터 13세기 볼가강 중류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로, 볼가 불가르족이 세웠으며 하자르의 지배를 받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 후 독립, 번성했으나 몽골 제국 침략으로 멸망, 킵차크 칸국의 일부가 되었고 현재는 러시아 연방의 일부로서 이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 - 불가리아의 역사 - 불가리아 제2제국
불가리아 제2제국은 1185년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1396년 오스만 제국에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으며, 칼로얀과 이반 아센 2세 시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불가리아 왕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 | |
공식 국명 | 불가리아 왕국 |
현지 국명 | 불가리아 차르국 (벌가리야 차르국) |
로마자 표기 | Tsarstvo Bulgaria (차르스트보 벌가리야) |
표어 |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서에디네니에토 프라비 실라타) |
표어 (번역) | 단결은 힘이다 |
국가 | 마리차는 전진한다 |
왕실 찬가 | 차르 찬가 |
![]() | |
역사 | |
건국 시기 | 1908년 |
멸망 시기 | 1946년 |
이전 국가 | 불가리아 공국 |
![]() | |
이전 국가 2 | 루마니아 왕국 |
이후 국가 1 |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 | |
이후 국가 2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이후 국가 3 | 그리스 왕국 |
![]() | |
왕정 이행 | 1908년 9월 22일 |
쿠데타 | 공산화 쿠데타, 1944년 9월 9일 |
공화제 이행 | 공화제 이행, 공산화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1946년 9월 15일 |
정치 | |
정치 체제 | 왕정 |
수도 | 소피아 |
인구 | |
1908년 | 4,215,000명 |
1920년 | 4,846,971명 |
1933년 | 6,067,000명 |
1946년 | 7,029,349명 |
면적 | |
1908년 | 95,223 제곱킬로미터 |
1933년 | 103,146 제곱킬로미터 |
1946년 | 110,994 제곱킬로미터 |
통치자 | |
국왕 (차르) | 국왕 (차르) |
1908년 ~ 1918년 | 페르디난트 |
1918년 ~ 1943년 | 보리스 3세 |
1943년 ~ 1946년 | 시메온 2세 |
총리 | 각료평의회 의장 |
1908년 ~ 1911년 | 알렉산더르・말리노프 |
1944년 ~ 1946년 | 키몬・게오르기에프 |
2. 역사
오스만 제국의 제후공국이던 불가리아는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었고, 1908년에 페르디난트 1세가 차르위를 선포한다.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발칸 동맹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이 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불가리아는 독일 제국 편에 섰다가 패배하여 페르디난트 1세는 퇴위하고 아들 보리스 3세가 뒤를 이었다. 뇌이 조약으로 불가리아의 영토는 축소되었다.
보리스 3세는 1923년 독재 정치를 선포하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 편에 섰다. 1943년 보리스 3세가 나치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어린 아들 시메온 2세가 즉위했으나 소련군에 의해 폐위되었다. 1946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중심으로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2. 1. 독립과 발칸 전쟁 (1908년 ~ 1913년)
오스만 제국의 제후공국이던 불가리아는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내고, 1908년에 페르디난트 1세가 차르위를 선포한다.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발칸 동맹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불가리아는 남부 트라키아 지방과 마케도니아 지방의 일부를 얻었으나 영토 분배를 둘러싸고 발칸 동맹 내부 간에 대립이 심화되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전체를 얻으려는 욕심에 1913년에 세르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루마니아 왕국과 오스만 제국까지 가세하여 불가리아는 패배하였고, 서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에게, 동트라키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할양해야 했다.전신인 불가리아 공국은 열강의 의도로 영토가 축소되는 등 자치권을 얻었지만 국내에는 불만이 남는 결과를 낳았다. 베를린 회의 이후, 1908년에 종주국 오스만 제국에서 청년 튀르크당 혁명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움을 받아 불가리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공 페르디난트는 군주 칭호를 황제(차르)로 변경했다. 이듬해 1909년 4월 19일,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 배상을 대신한다는 조건으로 불가리아 정부와 의정서를 체결했고, 불가리아는 명실상부한 독립국이 되었다.
1912년에는, 러시아 제국을 뒷받침한 발칸 국가와 오스만 제국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운 러시아 제국이 주도하여 불가리아 왕국은 세르비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과 발칸 동맹을 맺게 된다. 그리고 몬테네그로 왕국이 1912년 10월 8일에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불가리아는 이에 참전하여 승리하고 영토를 확대했지만, 마케도니아의 영유를 둘러싸고 동맹을 맺었던 세르비아 왕국, 그리스 왕국과 대립했다. 이러한 전후 처리의 불만이 원인이 되어, 1913년에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동맹은 붕괴되었고, 발칸 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불가리아는 패배하여, 마케도니아, 도브루자 지방, 동트라키아를 잃었다.
2. 2. 제1차 세계 대전과 전후 혼란 (1914년 ~ 1918년)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발칸 동맹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불가리아는 남부 트라키아 지방과 마케도니아 지방의 일부를 얻었으나 영토 분배를 둘러싸고 발칸 동맹 내부 간에 대립이 심화되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전체를 얻으려는 욕심에 1913년에 세르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루마니아 왕국과 오스만 제국까지 가세하여 불가리아는 패배하였고, 서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에게, 동트라키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할양해야 했다. 결국 이 전쟁은 당시 국제 정세와 맞물려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이 전쟁에서 옛 후원자인 러시아 제국을 배신하고 독일 제국 편에 붙었던 불가리아는 패배하여 페르디난드 1세는 퇴위하고 아들인 보리스 3세가 뒤를 이었다. 뇌이 조약으로 불가리아의 영토가 축소되었으며 서트라키아를 그리스 왕국에 빼앗기고 말았다.제1차 세계 대전에서 불가리아는 1915년 10월에 제2차 발칸 전쟁에서 세르비아 왕국에 빼앗긴 영토 회복을 목표로 동맹국의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연합국의 세르비아 왕국을 공격했다. 그러나 패배를 겪었고, 강화 조약인 뇌이 조약에 의해 에게해 연안을 연합국 일원이었던 그리스에 할양했다. 패전 후 불가리아의 정국이 혼미해졌기 때문에 보리스 3세 (불가리아)에 의해 친정이 행해졌다.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왕정 폐지 (1939년 ~ 1946년)
보리스 3세는 1923년 민주정을 대표하던 농민당의 알렉산더르 스탐볼리스키 총리를 암살하고 청년 장교들과 경찰들의 도움을 얻어 독재 정치를 선포하였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으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 편에 섰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불가리아는 추축국 측으로 참전하여, 1940년에는 루마니아 왕국령인 남도브루자를 병합했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이 추축국에 항복하자, 불가리아는 유고슬라비아 남동부(현재의 마케도니아 부근)와 그리스 동부를 점령 통치했다.1943년, 히틀러와 격렬한 논쟁 끝에 불가리아로 돌아가던 보리스 3세는 나치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그의 어린 아들 시메온 2세가 6세의 나이로 즉위했고, 보리스 3세의 동생인 키릴 공 등으로 구성된 섭정단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메온 2세는 소련군에 의해 폐위되었다.
1944년 9월 5일, 소비에트 연방군은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했다. 불가리아 국민은 동맹국 독일보다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인에게 친근감을 느껴 정부는 대소련전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소련군은 영토 내로 침공을 시작했다. 불가리아군은 무저항으로 항복했고, 같은 해 9월 9일에 쿠데타가 발생하여 정권이 교체되어, 연합국 측으로 전향하여 대독일전을 시작했다. 1946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2. 4. 공산화 이후 (1946년 ~ 현재)
1946년, 조국 통일 정부의 국민 투표 결과 왕정이 폐지되었다. 마지막 차르인 시메온 2세는 9세의 나이로 이집트로 망명했다. 불가리아는 공산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되었고,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소련 정책을 펼쳤다.동유럽 혁명 이후 1996년, 시메온 2세는 조국으로 귀환했다. 2001년 "시메온 2세 국민 운동"(National Movement for Stability and Progress|안정과 진보를 위한 국민 운동영어 - 2007년에 개명)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고, 총선에서 의석의 절반을 획득하여 총리가 되었다. 그는 경제 개혁에 수완을 발휘했지만, 왕정 복고를 꾀하지는 않았으며, 2005년 총선 결과에 따라 물러났다. 그는 "왕정 부활의 가부는 불가리아 국민이 결정할 것이다"라고만 언급하며, 복위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3. 역대 차르
페르디난트 1세 (1908년~1918년)
보리스 3세 (1918년~1943년)
시메온 2세 (1943년~1946년)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